2009년 4월 14일

고객에게 개고생한다고 당당히 말하는 KT

전 7년 전쯤 집에서 TV를 없애서 요즘 유행하는 광고를 잘 모릅니다. 어느 날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우연히 qook 광고를 보았죠. 나중에 그 광고가 KT의 티저광고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조직에 새로운 수장이 부임하면 대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전임 수장의 흔적 지우기죠. 전임이 하던 것이라면 무엇이든 부정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그런 일은 많은 조직에서 벌어지는데, 국가 차원에서도 벌어지죠.

KT에 새로운 사장이 부임하면서 10년 넘게 자리잡은 브랜드인 메가패스를 없애고 qook을 쓰기로 했답니다. 엄청난 돈을 써가면서 브랜드를 바꿀 필요가 있었는지 심히 의문이지만, 그것은 기업 내의 의사결정이니 그냥 넘어가도록 하고요.

qook 광고의 메인 테마인 ‘개고생’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봅시다. 개고생이란 말은 그 나쁜 어감과 함께 비속어일 것이라는 예측과는 달리, 사전에 등재된 표준어라고 합니다. KT가 막장 광고로 욕을 먹으니까 이런 지원사격하는 기사도 등장했죠.

관련기사: [조선일보] '개고생'이 광고심의 통과한 배경은?

‘개고생’이라는 말이 국어사전에 당당히 등재된 표준어이며, 본말의 뜻을 다시 알게 되어 널리 사용될 지도 모르겠다는 말로 기사가 끝나네요. 기사의 늬앙스는, 마치 KT가 순수한 우리말의 본뜻을 널리 알리는 좋은 일을 했다고 말하는 느낌입니다.

과연 그런가요? 국어사전에는 개고생뿐만 아니라 개죽음, 개수작, 개나발 등 접사 ‘개-‘로 시작하는 많은 말들이 등재되어 있습니다. 물론 다들 강하고 나쁜 느낌의 단어들이죠.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으면 공중파에서 아무 말이나 다 사용해도 되나요? 모든 단어는 그것이 쓰일 때와 장소가 있는 법입니다. 그러한 사회적 합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KT는 그것을 깬 것이죠.

한국의 대표적 기업으로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데 기여하지는 못할망정, 이렇게 막장 광고까지 해서야 되겠습니까?

어린 아이들이 이렇게 말할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 개고생 하십니다.”

KT는 이번 광고를 사회적 이슈로 만드는데 성공한 거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기업 이미지와 제품 및 서비스에 긍정적인 결과로 작용할 지는 심히 의문입니다. 여러분은 qook 광고를 보고서 qook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브랜드에 호감이 느껴지나요? 논란만 만들었을 뿐 브랜드에 대한 호감은 글쎄요..

고객들에게 개고생한다고 당당히 말하는 KT. 이것이 그들의 경영철학을 나타내는 단면이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

댓글 12개:

okogsu :

오늘 아파트 입구에서 개고생 쿡의 전단지를 봤어요...딱 보니깐 초고속 인터넷 가입하라는 내용...KT는 브랜드를 일관성있게 안가져가고 왜자꾸 바꾸는지 모르겠네요...

sunny :

저도 첨에 욕한다구 생각했어여. 세상에.이런 말을. 어떻게 광고에.?? 근데 표준어라네요. 그래도 예쁜 말은 아닙니다.아이들이 따라할까 겁나는 말이죠.

익명 :

좋은 글 감사합니다.

요즘 교사의 권위가 바닥에 떨어지는데
초등학생들한테 개고생 한다는 말을
들을 날도 머지 않았나요? ㅎㅎ

독자 :

한때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고 했던 곳도 있었는데 그 때문에 시험 때 많은 어린 아이들이 가구가 아닌 것을 고르는 문제에 답을 침대로 선택했었죠...

익명 :

한국적 창의성의 정의죠..
튀는것이 창의성이라는 말고 동일하게 이해하는 사람들 .. 참으로 많죠..

그래서..

머리 노랗게 물들이면 창의성 +1 이며 남들보다 독특한 개성을 가지면 창의성 +1입니다.

사회적 도덕, 상식, 개념을 무시하면 무시할수록 +가 증가합니다.

정치에서 많이 볼 수 있고..
타인에 대해 가혹하고 자신에 대해 관대하면 +가 더해집니다.

후진국이 달리 후진국이겠습니까?

리트비넹코 :

광고에 대한 첫인상은(KT와 관련성
여부 자체를 몰랐습니다 애초에 저는..)

언어순화나
사내 정치 여부를 떠나

미학적으로 참 쪽팔리는 광고가 아닌가
싶습니다.

보다 이쁘고, 매끄럽고, 세련되게
나아가야될 광고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상스러운 드라마서부터 미디어물이 더 많아져 참 고민입니다 요즘...

익명 :

개고생이 신선했다고 하는 중앙일보의 기사도 있습니다. 참 안습이지요. KT 담당자, 광고대행사, 언론사 다 수준이 그정도 입니다.

Vincent :

국어 사전에는 ㅆ, ㅈ 등의 경음이 자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온갖 욕들도 다 등재되어 있습니다. '개고생'이 사전에 등재되어 있으니 사용해도 된다는 논리라면, 방송에서 못쓸 말이 없겠습니다 그려.ㅠ

면스판 :

솔직히 막장이죠..굉장히 자극적인 단어를 이용하여 고객에게 각인시키려는..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와는 비교할 수 없는 케이스라고 생각합니다. 심의 통과한 것보다 더 신기한 것은 홍보담당부서의 의사결정 라인에서 저것을 승인했다는 점이죠..

김동휘 :

솔직히 KT관련 업무를 하고 있어서 Qook이 KT 티저 광고라는 것을 알았지만, 처음에는 왠 밥통 선전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나저나 그동안 밀던 매가패스가 없어지면서 나름 상품코드 자료 수정하는 작업하고 있는 직장 후배에게 안쓰럽다는 말을 남깁니다. X고생 해라?!?!

AppleADay :

개고생도 어감이 안좋지만, Qook이란 영어단어도 일종의 해프닝인것 같네요. 남의 나라 말인 영어를 사용할 땐 최소한 native speaker에게 감수라도 받아 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qook은 "기인(奇人), 괴짜, 미치광이"이란 뜻(다음 영어사전)의 kook과 발음이 같은데, 제가 영어권 국가에서 오래살아 봤지만 좋은 context에서 쓰이는 것을 들어본적이 없습니다 가끔 거리를 다니다 보면 정말 어이가 없는 영어 문구가 쓰여진 티셔츠를 보는데 좋은 한글두고 영어에 집착하는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하면서) 한국적 현상을 다시 확인하는 것 같습니다.

Unknown :

'개-'가 들어가면서 어감이 좋은 어휘는 거의 없을 것 같은데 KT에서 왜 '개고생'이라는 어휘를 사용했는지 의문입니다.
광고를 시청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충격을 주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그 점은 달성한 것이겠으나 결코 좋은 이미지를 남기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뿐만아니라 '쿡'도 그다지 달가운 느낌은 아닙니다. '집에 쿡'이라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건 저뿐만은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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